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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한줄

[책한줄]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by 신바람~독서 2023. 2. 8.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 임민경 / 들녘 

자살 각본

슈나이드먼은 1993년 출간된 저서에서 '자살 각본을 소개하였습니다.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은 자살에 이르기까지 마치 어떤 각본을 따르는 것처럼 비슷한 단계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슈나이드먼의 자살 각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견딜 수 없는 심리적 고통. 이 고통은 좌절된 심리적 욕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2. 외상적 자기 경멸 및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참지 않는 자기심상.
3. 극도로 제한된 생각, 비현실적으로 좁아진 행동 범위.
4. 고독감. 자신이 버림받았으며, 중요한 타인의 지지를 상실했다는 느낌.
5. 압도적으로 절망적인 무망감. 어떤 일을 해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느낌.
6. 인생을 떠나거나, 버리거나, 멈추는 것이 견딜 수 없는심리적인 고통을 멎게 하는 유일한(혹은 가능한 것 중에서 가장 나은) 방법이라는 의식적인 결정.

동기화

57-58)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전 유럽을 휩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이 책을 읽고 자살을 감행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와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
즉 베르테르에게 좀 더 공감하기 쉬웠던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아예 베르테르가 사망 당시 입었다는 푸른 연미복과 노란색 바지를 입고 자살한 사람도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영향이 어느정도였는지 알 만하지요). 또한 그들 대부분은 자살 방식까지도 권총을 관자놀이에 쏘아 자살하는, 베르테르와 동일한 방법을 택했는데, 이러한 연관성이 당대에도 위험하게 느껴지기는 했는지, 라이프치히 신학대학 교수들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금서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2판에서는 저자인 괴테가 직접 “이 책은 자살을 장려하는 책이 아니라 위안을 주기 위한 책”이라는 서문을 써넣을 정도였지요.

대인관계의 자살

41) 기존의 자살 이론 중 어떤 것도 아버지의 죽음을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통감했다고 합니다. 결국 조이너는 직접 자살 연구자가 되어, 자살과 관련된 심리학 이론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인 자살에 대한
대인관계이론the interpersonal theory of suicide을 정립하였습니다.

자살에 대한 대인관계이론은 우선 '자살을 소망하는 마음suicide desire'과 '자살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suicide capability,을 구분하였으며, 자살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 두 가지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살을 소망하는 마음은 또다시 하위 개념인 '좌절된 소속감thwarted belongingness’과 ‘짐이 된다는 느낌perceived burdensomeness'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항우울제의 발견 , 약이 들지 않는 경우 

101) 이처럼 항우울제에 잘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을 치료 저항적 우울증이라고 부르는데, 증상의 심각도나 개인적 특성, 발병 원인 등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십에서 삼십 퍼센트 정도의 우울증은 일반적인 항우울제로는 잘 치료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경우에는 다른 치료 선택지를 고려해봐야 하겠지요.

알코올

167)알코올은
첫째, 사회성을 증진하고,
둘째, 환상을 촉진하며,
셋째, 심리적 고통을 해소해준다는 것인데요.
이 세 번째 고통 해소 기능에서 우리는 많은 작가들이 심리적 고통에 시달렸겠구나, 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독자 대열에 합류했던 많은 작가들이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질환을 앓았고, 그중 많은 수가 살면서 한 번 이상 자살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습니다. 중독과 우울증, 혹은 중독과 다른 정신장애의 높은 연관성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중독과 자살이 맺는 관계는 다른 정신장애들이 자살과 맺는 관계보다 더 복잡한 데가 있습니다. 중독은 마치 자석처럼 다른 질병이나 고통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중독과 자살의 관계를 탐구하려면 중독과 자살 사이에 끼어 있는 다른 정신장애들과의 상호작용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자살로 이어지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양한 상호작용의 여러 측면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므로, 이 대목에서는 하나의 작품 혹은 작가를 선택하여 이야기하기보다는 여러 작가와 작품을 넘나들며 하나의 궤적을 그려보려 합니다.

중독자의 뇌

184) 중독자의 뇌에 대한 아주 직관적이고, 그래서 더욱 잔인한 비유가 있는데, 바로 '오이와 피클' 비유입니다. 오이가 피클이 될 순 있지만 피클이 다시 오이가 될 수는 없듯이, 한번 뇌가 약물에 절여지면 그 구조와 기능의 차원에서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변이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중독성 물질이 뇌에 미치는 무수히 많은 영향 중에서, 우선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행동 통제 능력 저하와 그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충동성과 공격성입니다. 대표적으로 알코올을 예로 들어봅시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중독자이든 아니든, 자살 시도자 및 자살 사망자 중 자살 행동을 할 당시에 음주 상태였던 경우가 사 분의 일에서 이 분의 일가량이라고 하며, 한국의 경우에는 자살 시도자의 약 오십 퍼센트가량이 음주 상태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