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 을유문화사
230-231) '반할 거다'라는 그런 말도, 또 '나를 좋아한다'는 말도 나의 경우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고, '보살핌을 받는다'라고나 하는 편이 약간은 사실적인 상황의 설명에 적당할지도 모릅니다.
여자는 남자보다는 더욱 어릿광대적인 행동에 편안함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내가 어릿광대 노릇을 아주 잘해도 남자는 그걸 보고 언제까지나 히죽히죽 웃고만 있지는 않으며, 그래서 나도 남자에게는 너무 신바람나게 어릿광대 노릇을 하면 실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적당한 정도에서 끝내도록 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적당한 정도라는 것을 모르고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내가 어릿광대 노릇 하기를 원했고, 나는 그 한없는 앙코르에 응해서 기진맥진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잘도 웃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도 쾌락을 더 욕심 부려 음미할 수가 있는가 봅니다.
330) 신에게 묻노니, 신뢰는 죄이런가?
요시코가 유린을 당했다기보다는 요시코의 신뢰가 유린당했다는 데 있어서, 내게는 그것이 그후 오랫동안 살아 있기가 어려울 만큼 고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나처럼 천박하고 늘 겁먹고 있으며, 남의 눈치만 보고, 사람을 믿는 능력에 금이 간 사람에게 있어서, 요시코의 때 묻지 않은 신뢰감은 그야말로 아오바의 폭포처럼 싱싱하게 여겨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룻밤에 누런 더러운 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보라, 요시코는 그날 밤부터 내가 한 번 찡그리고 한번 웃는 표정의 변화에까지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347) 신에게 묻노니, 무저항은 죄이런가?
호리키의 저 괴상하고도 아름다운 미소에 나는 울었고, 판단도 저항도 잊어버리고 자동차에 타고, 그리고 여기 끌려와서 미치광이가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여기서 나간다 해도 역시 나는 미친 사람,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이마에 찍히게 될 것입니다.
인간실격.
이제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여기 온것은 초여름 무렵으로, 철창으로 병원 정원의 조그마한 연못에 수련꽃이 피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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