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케이틀린 도티/임희근 | 반비 |
죽음에 이른 자들이 간 곳..
89) 오늘날, 시체를 억지로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선진국에서만 누리는 특권이다. 바라나시의 보통날, 인도의 갠지스 강둑 위에는 80개에서 100개쯤 되는 화장터가 자리 잡고 불이 타오른다.
매우 공개적인 화장(때로는 인도의 불가촉천민 계급의 어린 아이들이 담당하는)이 끝나면 뼈와 재는 성스러운 강물 속으로 흘려보낸다.
화장은 싸지 않다. 비싼 장작 값, 다채로운 수의, 게다가 화장 전문가까지 비용에 재빨리 합산된다. 화장에 드는 비용을 충당할 수는 없어도 사랑하는 고인이 갠지스강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가족들은 시신을 통째로 밤중에 강물로 밀어 넣어 그대로 부패하게 한다. 바라나시를 찾은 사람들은 퉁퉁 불은 시체가 강물 위를 이리저리 떠다니거나 개들에게 뜯어 먹히는 광경을 볼 수있다. 갠지스강에는 이런 시체가 하도 많아서 인도 정부는 남의 살을 먹는 거북이를 수천 마리나 풀어 '강물을 오염시키는 시체들'을 뜯어 먹게 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망자와의 달갑잖은 만남을 막는 체계를 만들어놓았다. 바로 이 순간, 시신은 크리스가 운전하는 차처럼 아무 표시도 없는 흰색 밴에 실려 고속도로와 주간(州)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휴가 가는 승객들이 위칸에 타고 여행하는 동안, 시체들은 비행기 짐칸에 실려 지구 위를 종횡으로 누빈다. 우리는 아래칸에 죽은 이를 넣어놓았다. 지하에 둔 것이 아니라 병원의 위장된 이송용 침대 아래에, 우리 여객기의 배 속에, 그리고 우리의 의식 아래에 두고 있는 것이다.
죽은 다음에도 돈이 드는...
150) 화장 비용을 치를 시간이 되자, 응우옌 부인은 내게 신용카드를 건넸다가 다시 거둬들이며 말했다. "잠깐만요. 자요, 아가씨.아까 것 말고 이 카드로 해주세요. 이걸 쓰면 항공사 마일리지가적립되거든요. 최소한 마크가 내게 몇 마일은 벌어준 셈이네요."
“어디 열대 지방에라도 한 번 다녀오셔야겠네요.” 나는 생각없이, 마치 그 어머니가 여행사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내뱉었다.어쨌든 아들이 지저분한 모텔 방에서 죽은 것을 발견한 엄마라면, 열대 칵테일 한 잔쯤은 마실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
151) “그것도 좋을 것 같네요, 아가씨." 그녀가 영수증에 서명하면서 말했다. "난 언제나 하와이에 있는 카와이 섬에 가보고 싶었답니다."
"전 원래 오아후 섬 출신이지만 나중에 하와이 본섬의 힐로쪽을 정말 좋아하게 됐죠." 하고 나는 대답했다. 우리는 하와이섬 이곳저곳의 장단점에 관해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들 마크의 화장 비용 마일리지를 써서 응우옌 부인이 방문할 수 있는 곳에 대해서 말이다.
죽은 사람들 얼굴을 꾸미는 이유...
171) 죽은 사람들은 매우, 매우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게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데, 왜냐하면 우리 중 누구라도 황야에 돌아다니는 시체 무리를 우연히 마주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집에서 죽는 일이 드물고, 설령 집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마지막 숨을 내쉬는 즉시 시신이 장의사로 운송 된다. 만일 북미에 사는 어떤 사람이 시체를 "보고 왔다.”고 하면,그 시체는 아마 이미 장의사 직원의 손으로 방부처리된 후에, 얼굴에 화장(化)도 잘되고, 의상도 일요일에 입는 제일 좋은 옷이 입혀진 상태일 것이다.
텔레비전의 범죄 프로그램도 이 문제에 좀처럼 도움이 되지않는다. 황금시간대 TV에 나오는, 보통 하녀나 관리인, 혹은 센트럴 파크에서 조깅하던 사람들이 발견한 시체들은 한결같이 두눈을 딱 감고 입술은 꼭 다물고, 희고 푸르스름한 화장으로 반짝반짝하게 칠해져 있어, 마치 조문객을 받을 준비를 이미 마친 것처럼 보인다.
172) 그것은 시청자들이 봐도 '죽었다'고 생각될 만한 모습이다. 이런 프로그램의 피해자들을 연기하는 젊은 모델과 배우들은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CSI와 치안 당국을 다 거치고 난 시체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장의사에 오는 대다수의 시체들이 암이나 간경변 등의 질환을 몇 년이나 앓느라 늙고, 울퉁불퉁해지고, 고통에 시달린 것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200) 현대의 장의업에서 죽음을 '개별화'한답시고 만들어진 것은 매우 많다. 이런 마케팅 서사는 베이비부머들의 주머니를 노린것이며, 적당한 가격에 특별한 물건들, 이를테면 볼티모어산까마귀색 관, 골프 클럽 모양의 납골함, 오리 사냥 장면이 그려진 시신이불 등과 함께 모든 죽음이 찾아올 수 있음을 보증한다. 《장의관리》라는 장의업계의 주요 잡지에서는, 토머스 킨케이드의 출현으로 죽음의 납골당이 마치 그리스도의 재림처럼 무지갯빛 전원풍경 같은 색을 띠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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