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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한줄

[책한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by 신바람~독서 2023. 1. 28.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이어령 / 열림원

"이번이 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거예요"라는 말이 담긴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 기사(종이책 297쪽 전문 수록)가 나갔던 2019년 가을 이후로, 세상은 달라졌다.
인터뷰 전문 기자로의 내 인생 또한 그 기사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그것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나는 늘 그렇듯 사무실 한켠에서 새벽까지 홀로 또각거리며 자판을 두드렸고 집에 와서 잠자리에 누웠다. 옆에 누운 두 아이의 새카만 머리통과 자그만 두 덩이의 발바닥을 더듬어 만져보며 살아 있다는 것의 생명감에 몸을 떨었다.
기사를 완성하기까지 혹 그사이에 선생님이 떠나실까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출고 버튼을 누른 후에는 또다시 '내가 이 어른의 마지막 말을 전할 자격이 되나?' 두렵고 송구해서 뒤척였다. 그리고 정확히 그날 아침 일곱시부터 내 전화통은 불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라는 이어령 선생님의 메시지에 반응했다. 이어령 선생님의 말처럼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가 이 인터뷰의 핵심이다. 돌아보면 선생이 이 시대에 태어나 대중앞에서서 쓰고 말한 모든 것도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이라는 거대한 동굴을 들여다보고 그 벽에 삶이라는 빛의 열매를 드리우는 능력은 선생이 가진 특별한 힘이다.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말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예지는 너무도 생생해서, 살았거나 죽었거나 상관없이 그의 힘찬 육성이 일상 곳곳을 파릇파릇하게 파고든다.

 

"그것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네. 내가 그랬지.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웃겨주려고 한 이야기였는데, 농담 속에 진실을 말해버렸어.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야………… 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어머니 곁으로......."
"그래. 인간이 태어나서 사는 과정이 그래. 아기 때는 어머니 치맛자락 붙잡고 떨어지면 죽는 줄 알지. 그러다 대문 밖으로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들하고 정신 빼놓고 놀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지. 그러다 부르면 화들짝 놀라서 원위치로 가는 거야.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거라네.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그래서 내가 일관되게 얘기하는 것은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라는 거야. 까마귀 소리나 깜깜한 어둠이나 세계의 끝, 어스름 황혼이 아니지."
"눈부시게 환한 대낮이지요."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장미 밭 한복판에 죽음이 있어. 세계의 한복판에. 생의 가장 화려한 한가운데.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야. 고향이지."
"그 말이 왜 이토록 아름다울까요."
"어둠이 아니라 빛이라서, 밤이 아니라 대낮이라 그렇지."
"그 모든 이치를 관심, 관찰, 관계의 맥락으로 깨달으셨다는 거죠?"
"젊었을 때는 관심이 최우선이었어. 사오십대 되니 관찰을 알겠더군. 늙어지니 관계가 남아. 관계가 생기려면 여러 대상에 한꺼번에 기웃거리면 안 돼. 데이트하는 곳에 가봐. 열 명 있어도 한 명만 보이잖아. 그 한 명만 관찰하는 거잖아. 사진 찍을 때 전체 풍경이 잡혀도 내 눈이 가는 한 곳에 초점 맞추듯이. 어차피 우리는 전체를 찍을 수 없어."
"죽기 직전, 눈앞에는 인생이 파노라마 필름처럼 펼쳐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아닐세.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야. 한 커트의 프레임이야.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거지. 한 커트의 프레임에서 관찰이 이뤄지고, 관계가 이뤄져. 찍지 못한 것, 버렸던 것들이 나중에 다시 연결돼서 돌아오기도 해."

 

-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
옛날엔 나는 약하니 욥 같은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했지요. 지금은……………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는 안 해요. 역사적으로도 부활의 기적은 오로지 예수 한 분뿐이니까. 나의 기도는 이것이에요. '어느 날 문득 눈뜨지 않게 해 주소서.'내가 갈피를 넘기던 책, 내가 쓰던 차가운 컴퓨터………… 그 일상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싶어요."

그전까지는 죽음의 의미, 생명의 기푸투를 마지막까지 알고자 한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사형수도 형장으로 가면서 물웅덩이를 폴짝 피해 가요. 생명이 그래요. 흉악범도 죽을 때는 착하게 죽어요. 역설적으로 죽음이 구원이에요."

그러니 죽을 때까지 최악은 없다고. 노력하면 양파 껍질 벗겨지듯 삶에서 받은 축복이 새살을 드러낸다고. 빅뱅이 있을 때 내가 태어났고, 그 최초의 빛의 찌꺼기가 나라는 사실은 '수사'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라고. 여러분도 손놓고 죽지 말고,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끝까지 알고 맞으라고. "종교가 있든 없든, 죽음의 과정에서 신의 기프트를 알고 죽는 사람과 모르고 죽는 사람은 천지 차이예요." 한 마디 한 마디, 목구멍에서 빛을 길어 올려 토해내는 것 같았다. 녹색 칠판 앞에 앉아 선생이 마지막으로 판 우물물을 거저 받아 마시자니, 감사가 샘처럼 벅차올라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