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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한줄

[책한줄] 선량한 차별주의자

by 신바람~독서 2023. 2. 25.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 창비 

미국사회의 인종차별 개선은 특권을 잃는 백인의 입장에서 흑인보다 더욱 크게 체감한다. 기존에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평등해지는 것이 손실로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평등을 제로섬 게임 Zero-sum game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상대의 이익이 곧 나의 손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성평등을 둘러싼 논쟁에서 비슷한 긴장이 감지된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양성평등 실태조사 분석 연구」를 보면, 사람들은 현재 한국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지만 앞으로 그 불평등이 감소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앞으로 남성에게 더 불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드러낸다." 평등을 총량이 정해진 권리에 대한 경쟁이라고 여긴다면, 누군가의 평등이 나의 불평등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사실은 상대가 평등해지면 곧
36) 나도 평등해지는 것이 더 논리적인 추론인데도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등이라는 대원칙에 동의하고 차별에 반대한다. 헌법에도 명시된 규범인 평등과 차별금지원칙에 적어도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진 집단은 차별을 덜 인식할 뿐만 아니라 평등을 실현하는 조치에 반대할 이유와 동기를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차별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국가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외쳐왔지만 주류로서 자신이 가진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여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진보' 정치인을 종종 보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이 모든 작용이 대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세상이 기울어져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평등을 찾다보면 불평등한 해법이 나오기 쉽다. 기울어진 땅에 서서 양손으로 평행봉을 들면 평행봉 역시 똑같이 기울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38) 최규석의 웹툰송곳에서는 지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모습을 이렇게 꼬집어 말한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나는 어디에 서서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가. 내가 서 있는 땅은 기울어져 있는가 아니면 평평한가. 기울어져 있다면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이 풍경 전체를 보려면 세상에서 한발짝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이 세계가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지 알기 위해 나와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사람과 대화해보아야 한다. 한국사회는 정말 평등한가? 나는 아직까지 한국사회가 그 이상향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더 발견해야 할 때다.

 

98-99) 예전에 한 식사 자리에서 나는 어느 로펌의 원로 변호사와 같은테이블에 앉은 적이 있다. 나를 비롯한 로스쿨 학생들 사이에서 그는 기분 좋은 큰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여자는 공부 잘해봐야 소용없어. 남자가 공부를 잘해야 큰일을 하지." 옆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이 말을 유쾌한 웃음으로 받아넘겼고, 나도 그랬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일을 생각하며 뒤늦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말을 한 원로 변호사에게 화가 난 만큼 그 자리에서 웃는 모습을 보인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말에 웃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문제제기를 할 만큼 순발력이 없다면, 그런 상황에서 웃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극적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유머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청중의 반응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누가 웃는가?" 라는 질문만큼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 '웃찾사'의 흑인 분장 사건처럼 웃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그 유머는 도태된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