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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원독서모임

[잠원-독서모임][2월8일]인간 실격/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by 신바람~독서 2023. 1. 28.
■ 모임일시: 2월 8일(수) 저녁7시~8시
■ 모임장소: 줌(ZOOM)
■ 주제도서: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지음 / 출판사 상관없음     * 일본소설/자전적소설/데카당스
■ 추가도서(주제도서 이후 시간남을시) :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 문학으로 읽는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 / 임민경 지음 / 출판사 들녘     * 심리학/메커니즘
■ 독서를 못하신 분들도 참여가능하오니,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

 인간 실격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 민음사 

자전적 소설 / 일본소설 / 데카당스 

출판사 리뷰 ( http://www.yes24.com/Product/Goods/1387488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하는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 

1948년 서른아홉의 나이로 요절하여 일본 사회에 큰 파장을 남긴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적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오직 순수함만을 갈망하던 여린 심성의 한 젊은이가 인간들의 위선과 잔인함에 의해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인간 실격」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데 있어 다자이보다 뛰어난 작가는 드물다.”(《뉴욕 타임스》)라는 평가를 받으며 전후 일본 젊은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함께 실린 「직소」에서는 유다의 인간적인 측면을 다자이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새로이 조명하고 있다.

너무나 순수했기에 파멸할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이의 초상

「인간 실격」은 ‘나’라는 화자가 서술하는 서문과 후기,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 요조가 쓴 세 개의 수기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는 요조의 사진 세 장이 등장하는데, “쭈그리고 앉아 화로에 양손을 쪼이다가 그냥 그대로 죽어간 것 같은” 사진 속 인물의 음산함이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를 설정해 주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요조는 그 인간 세계에 스스로 동화되기 위해 “익살꾼”을 자처해 가며 노력하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결국 마약에 중독되고 자살을 기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거듭된 동반 자살 기도에서 여자만 죽고 혼자 살아남은 요조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본가로부터도 절연을 당하고 외딴 시골집에서 쓸쓸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인간 실격자”가 되고 만다.

인간 사회의 위선과 잔혹성을 한 개인을 통해 거울처럼 보여준 작품

현재 일본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일본 작가로 다자이 오사무를 꼽고 있다. 또한 다자이는 ‘무뢰파’로 불리며 현재까지도 일본 데카당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다자이에게 있어서의 데카당은 단순한 퇴폐주의가 아니라 패전 후라는 일본의 독특한 시대 상황과 맞물려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기성세대의 가치관 및 윤리관, 도덕관이 패전과 함께 붕괴되면서, 다자이의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타락과 자기 파괴적 언행은 기존 사회에 속한 모든 것을 거부함으로써 철저한 무(無)에서부터 새로이 시작하고자 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몇몇 다자이 연구가는 「인간 실격」을 분석하기를, 세상을 합법적 세계에 속하는 남성 세계와 비합법적 세계에 속하는 여성 세계로 나누었을 때 사회의 실세를 형성하고 있는 남성 지배 세계에서 소외된 ‘요조’가 결국은 어느 세계에도 귀속하지 못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증명해 보인 작품이라고 하고 있다.
타산과 체면으로 영위되는 인간 세상과 사회 질서의 허위성, 잔혹성을 「인간 실격」만큼 명확하게 드러낸 작품도 드물 것이다.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하고자 애쓰고 순수한 것, 더럽혀지지 않은 것에 꿈을 의탁하고,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든 것에 배반당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가는 패배의 기록인 이 작품은 그런 뜻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고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위선적인 인간상을 대표하는 등장인물들인 요조의 보호자 ‘넙치’와 악우(惡友) ‘호리키’가 드러내는 상식적인 인간상의 (적어도 그들은 이 사회에서 당당히 존재 가능하다.) 추악함은, 이 사회의 틀에 젖어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성을 촉구한다.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유다’라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직소」

「직소」는 유다가 예수를 고발하는 자리에서 늘어놓는 이야기를 마치 독자가 현장에서 함께 듣고 있는 것처럼 서술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일반적인 해석과 달리, 예수를 흠모하고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거부당한 데 대한 분노와 반발심으로 예수를 팔아넘기게 되는 유다의 갈등과 번민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는 유다를 배신자로 지목한 기록이 없다. 예수는 유다에게 “가서 네가 할 일을 하라.”라고 하고 있다. 유다는 예수의 영광을 위해 설정된 인간이었을 수 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가 말하듯 예수가 없었다면 유다의 고뇌도 없었을 것이다. 다자이는 이 작품에서 예수와 유다 양쪽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으나 외곬이며 질투 많고, 애정과 증오 사이에서 흔들리는 유다 상의 조형은 유다에 대한 다자이의 관심이 예수에 대한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남에게 넘기느니 내 손으로 죽여주겠다고 유다가 결심하는 부분이라든가 “돈. 세상은 돈이면 다야.”, “나는 필경 장사꾼이지. 돈푼깨나 생길까 하고 쫓아다녔지만 글렀다는 것을 알고 배반한 거지.”와 같은 유다의 자학은 탁월한 심리 통찰이라 하겠다.

작가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도쿄 제국 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후 한때 좌익 운동에 가담했다. 1930년 연인 다나베 아쓰미와 투신자살을 기도했으나 홀로 살아남았다. 1935년 마약성 진통제인 파빌날에 중독되어 정신 병원에 수용되었다. 
같은 해 소설 <역행>이 아쿠타가와상차석에 그치자 심사위원 가와바타 야소나리에게 항의하는 글을 발표했다. 1936년 첫 창작집 <만년>이 간행되었다. 
1946년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한 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인간 실격>을 발표한 1948년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마강 수원지에 투신해,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작가 ( 참고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14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다. 1909년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현에서 11남매중 10번째로 태어났다. 대한제국이란 나라가 사라지기 1년전이다. 그의 조상은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성공했고, 아버지도 사업울 물려받아 대금업을 하다가 중의원 의원으로 정치활동을 했다. 형이 아버지 뒤를 이었다.
....
작가가 20대, 30대일 때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 1939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는 전쟁에 동원되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병역을 기피했다. 그의 정신병력 때문이었는지, 부모의 영향력 때문이었는지는 언급이 없어 알수 없지만, 그 시대 지식인으로는 사회도피적 행태가 자살의 충동으로 나타난 듯 싶다. 부자였던 게 후회되고, 전쟁에 나가지 못한게 부끄럽고, 군부 통치에 대항하지 못한 것이 죄악이라면 당대의 지식인은 자살을 미적 감각으로 보았을수도 있다. 일본이 패망한 후 미군정이 시작되었을 때 만세일계(萬世一系)라던 천황이 미군 장군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대일본제국이 사라졌을 때 그 좌절감은 죽고 싶었을 것이다.

.... 좀더 자세한 내용은 위의 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데카당스 문학 

단어 자체는 '퇴폐', '쇠락'이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19세기 프랑스 에서 시작한 문예사조에서의 데카당스는 '퇴폐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예술적인 것'을 지칭한다.
(나무 위키 참고 )
데카당스 개념의 재조명⇒
퇴폐나 쇠락이 아닌 포화된 근대문화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현: 현재 문학이나 문화의 위기를 지칭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데카당스’라는 프랑스 단어는 근대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유와 감성을 표현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등장한 이 단어가 즉시 전유럽적인 반향을 일으켰다는 사실, 그리고 1900년대 초 메이지 유신 시기의 일본작가들, 1930년대 한국작가들이 자신들의 독특한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이 생경한 프랑스어가 담고 있는 개념에 천착했다는 사실은 데카당스가 유럽과 동양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할 수밖에 없는 문화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데카당스가 근대적인 문화현상을 가리키는 새로운 용어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그 개념이 근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로 등장한 ‘진보’의 개념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견 상반되고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이 두 개념은 ‘동시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근대 초기에는 진보와 데카당스가 순환론적인 관점, 즉 탄생과 성장, 건강과 노쇠, 그리고 죽음과 새로운 삶의 출현 등과 같은 생명체와의 유비를 통해서 이해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두 개념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진보의 개념은 생명체와 관련된 함의, 특히 인간의 삶과 관련된 함의를 상실하게 되면서 생물학보다는 역학(力學)과 관련된 순수한 추상적인 시간의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즉 끊임없는 발전으로서 파악된 시간관 혹은 역사관은 19세기에 지배적인 가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진보의 개념은 오히려 인간을 그 시간성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정치·경제·사회적 기본 논리로서 진보라는 개념은 부정되지 않고 여전히 유효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진보의 결과물 앞에서 환희가 아닌 상실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며, 이러한 심리상태는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을 통해 표현되었다.

참고 : 

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research.html?dbGubun=SD&category=Research&m201_id=10016787

 

데카당스: 근대의 종말에 대한 문학적 인식과 표현

가. 연구결과의 학문적 사회적 기여도: 일반적으로 종말을 표현하는 문화인 데카당스는 역설적으로 진보에 대한 믿음이 지배적인 역사관으로 자리 잡게 되는 19세기 프랑스에서 등장, 즉시 전유

www.krm.or.kr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 임민경 / 들녘 

문학으로 읽는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 

심리학 / 메커니즘 

출판사 리뷰 ( http://www.yes24.com/Product/Goods/89510555

그들은 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문학이 보여주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살의 메커니즘

이제 자살은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운 단어가 되어버렸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 수는 전년도에 비해 십 퍼센트 가까이 증가했으며, 성인 열 명 중 두 명가량이 자살을 생각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몇 년 사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연예인들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많은 이들이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누군가의 자살 소식을 들으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기는 하지만, 자살을 선택하는 마음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 애도는 죽은 이의 고통의 핵심에 가닿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지, 도리어 해가 될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상심리 전문가인 저자는 자살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문학이라는 도구를 가져왔다. 왜 문학인가? 심리학의 관심사는 대개 양적인 측면에 있다. 자살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을 현상학적으로 기술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위험 요인과 보호 요인을 찾아 사람들을 최대한 자살로부터 떼어놓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반면 문학은 원인과 원리를 설명하는 것보다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자살이라는 현상을 보다 직접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더 깊은 이해를 위한 매개가 될 수 있다. 문학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심리학적 지식과 자살학 이론을 통해 분석하여,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자살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본다.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문학 속 등장인물들이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

총 2장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장에서 자살자의 심리를 다룬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스로의 의지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한 수준의 무력감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느낌 등으로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자살은 심리적 고통의 결과라는 말은 일견 뻔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자살을 이렇게 정의함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은 분명하다. 자살은 ‘나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 ‘범죄’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에 반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자살자들을 책망하기 앞서 그들의 입장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우울증, 양극성 장애, 중독 등 자살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정신장애들에 대해 다룬다. 마음에 치명적인 고통을 초래하는 질병들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치유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저자는 마음의 고통과 질병은 유독 다루기 까다로운 측면이 없지 않지만, 차근차근 접근해간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격려한다.

이 책은 『안나 카레니나』 『인간 실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자살에 대한 유명한 고전뿐 아니라, 『벨 자』 『댈러웨이 부인』 『리틀 라이프』 등 자살학의 관점에서 그 가치를 새로이 발견할 수 있는 문학 작품들을 재조명한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거나,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힌다. 또 우울해하거나, 환청을 듣거나, 물질에 중독되면서 끊임없이 자살에 가까이 다가간다. 이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자살이라는 현상을 보여주는 인물들을 심리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볼 때, 독자는 자살이라는 현상의 본질에 한층 더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자살을 마주함에 있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일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될 것이다.

“제가 등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임상심리 전문가가 전하는 메시지

문학을 통해 자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유익은 무엇일까? 자살은 실로 복잡한 현상이다.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생명체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거기다 자살에 대한 생각이 자살과 관련된 행동을 유발하고, 그 행동이 또다시 자살에 대한 생각을 심화하는 등 증상이 증상을 악화시키는 모습은 보는 이를 아연하게 할 정도다.

하지만 저자는 문학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벨 자』를 쓴 실비아 플래스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긴 했으나, 한때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십 년이라는 시간을 더 벌어주었으며, 그 시간 동안 『벨 자』라는 명작을 탄생시켰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작가 괴테는 한때 죽음과도 같은 고통에 시달렸지만, 본인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한 후에 팔십이 세까지 장수했다. 심각한 알코올중독으로 술잔을 드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존 치버는 중독을 이겨내고 ‘구원과 부활의 노래’라 칭송받는 『팔코너』를 완성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최대한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또한 자살이라는 심연 속에 작은 등불을 하나 밝히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에리히 프리트는 많은 경우 문학은 삶을 혐오하여 쓴 것도 사실은 삶을 위해 쓴 것이며, 죽음을 찬양하여 쓴 것도 사실은 죽음을 이기기 위하여 쓴 것이라 말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살이라는 현상을 살피며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에 대해 쓰인 문학을 삶을 위한 문학으로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임상심리전문가이자 정신건강임상심리사.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 및 상담심리 석사학위를 받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3년간 임상심리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범죄 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 인천스마일센터에서 내담자들을 만났으며, 지금은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언제나 누군가의 애독자이자 무언가의 애호가다. 지은 책으로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