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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참고자료

[연금술사] 참고자료 - 인물 (멜기세텍/산티아고) / 우림과 툼밈

by 신바람~독서 2023. 1. 9.

멜기세덱 / 산티아고 

 멜기세덱

십일조의 유래 / 축복을 주는 사람 

연금술에서 산티아고에게 양의 10분의 1을 달라고 합니다. 60마리중 6마리르 가져가죠. 

https://namu.wiki/w/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이니만큼 당연히 유대교가 창시되기 이전부터 신의 제사장직을 관할하고 있던 것만은 확실한데,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훗날 예루살렘이라 불리게 되는 지역인 살렘 일대를 다스리는 왕이었다고 한다.

당시 배경이 신정일체식 정치가 흔했던 청동기 시대로 여겨지기에 부족국가의 왕이 제사장을 겸임하는 것이야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뜬금없는 장면에서 갑툭튀한 주제에 성경 전체를 꿰뚫는 핵심이론의 한가운데 놓인 사람인지라,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이 매우 크다.

시편이나 히브리서에 멜기세덱이 언급되긴 하지만, 멜기세덱의 직접적인 행적은 성경 전체에서 창세기 14장 17-20절 외에는 어디에도 없어 매우 미스터리하고 신비로운 인물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려 했지만, 교인들이 진도를 못 따라가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한다.

성경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여러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맞아 축복해 주었고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전리품의 10분의 1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고 그 다음 살렘 왕이라는 칭호는 평강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서 영원히 사제직을 맡아보는 분입니다.그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대선조인 아브라함까지도 전리품의 10분의 1을 그에게 바쳤습니다.레위 자손들도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지만 사제직을 맡았기 때문에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수입의 10분의 1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을 율법으로 보장받았습니다.그러나 멜기세덱은 레위 가문에 속하지 않았는데도 아브라함에게서 수입의 10분의 1을 받았고 하느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습니다.다시 말할 것 없이 축복이란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주는 것입니다.사제들도 10분의 1을 받고 멜기세덱도 10분의 1을 받았지만 사제들은 언젠가는 죽을 사람들이고 멜기세덱은 성서가 증언하는 바와 같이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말하자면 10분의 1을 받는 레위까지도 아브라함의 손을 거쳐서 멜기세덱에게 10분의 1을 바친 셈입니다.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맞았을 때에 레위가 조상 아브라함의 몸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이스라엘 백성은 레위의 사제 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율법을 받았는데 만일 그 사제 제도로 완전해질 수 있었다면 아론의 계통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계통인 또 다른 사제를 세울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사제 제도가 변하면 율법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그분은 레위 지파 아닌 다른 지파에 속한 분이고 그 지파 사람으로서 일찍이 제단 일을 시중든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우리 주님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오신 것은 명백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 지파를 사제직에 관련시켜 말한 일은 한 번도 없습니다.멜기세덱과 같이 다른 계통의 사제가 나타나셨으니 일은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그분이 사제가 되신 것은 인간의 율법의 규정을 따라 되신 것이 아니고 불멸의 생명의 힘을 따라 되신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성서에 "너는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1-17절(공동번역)
멜기세덱이 성경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가지게 되는 핵심 이유. 히브리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고 하는데, 이는 멜기세덱이 제사장의 직분을 맡던 레위 부족이 생겨나기도 전에 존재한 인물
이기 때문이다. '유대교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하나님의 제사장'이야말로 예수의 권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설명하기에는 가장 좋은 소재였다. 또한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멜기세덱을 두고 공통적으로 내리는 평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왕이자 제사장'인데, 그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내린다.

이는 예수가 '하나님께서 직접 위임하신 특별한 존재'임을 설명하는 소재가 된다.

또한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일반적인 희생 제사가 아닌 빵과 포도주를 통한 '축사' 형식을 띠었다는 것 또한 특기할 만한 부분인데, 이러한 축사가 제사를 대체하는 축복의 형식으로 보편화된 것은 그 당시는 물론이고 창세기가 기록되고부터도 한참이나 지난 예수의 등장 이후이다. 가족 간이나 종족 국가 간 우호 증진 목적으로 만찬을 나누는 것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이를 축복의 범위에서 종교적 해석을 하는 것은 굉장히 신성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빵과 포도주를 떼어 나누며 축사하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인 유월절 밤에 예수와 12제자들이 가졌던 최후의 만찬과 비교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빵과 포도주로 축복을 빌어주는 장면은 최후의 만찬 빼고는 이 멜기세덱이 한 것밖에 없다.

이와 같은 멜기세덱의 튀는 행보는 아브라함계 종교의 근원인 야훼 신앙이 다른 유목 민족들의 고대 신화를 이리저리 짜깁기해 만들어졌다는 '신화 근원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근거가 되기도 한다. 사실상 성경의 멜기세덱이 최초의 사례이다.

 

 산티아고

https://namu.wiki/w/

Santiago el Mayor.
예수의 12사도 중 한명인 야고보의 스페인어식 발음이 티아고(Tiago), 성(聖)을 뜻하는 산(San)을 붙인게 San Tiago 즉 산티아고이다. 스페인어권 남자 이름으로 흔한 디에고 역시 같은 야고보를 뜻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가 아 산디에고를 영어식으로 읽은 이름으로 원래 이 도시는 스페인 콘키스타도르 바스코 데 발보아와 페드로 코로나도가 만든 도시이다.

스페인어로는 성 야고보를 라틴어 표기인 Iacobus에서 유래한 '이아고(Iago)'라 하였는데 앞에 성인을 뜻하는 '산토(Santo)'이 붙으면서 '산토 이아고(Santo Iago)', 이것이 변하여 산트 이아고(Sant Iago), 산티아고가 되었다. 한마디로 성 야고보라는 뜻. 같은 말로 앞에 언급한 산디에고(San Diego)가 있다. 티아고(Tiago)나 디에고(Diego)라는 이름도 산티아고에서 유래한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야고보가 예수의 12제자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데, 그 이유는 야고보가 초기 기독교 선교 시절 이베리아 반도에 와서 선교한 뒤 사후에 그의 시신이 스페인으로 다시 옮겨져 매장되었다는 전승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가 묻혀졌다는 지역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하여 가톨릭은 물론 여러 기독교 종파에서 성지로 칭송받고 있다. 스페인 북부 해안가를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산티아고 순례길도 유명하다. 가톨릭이 가장 유명하지만 타 교파들에서도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우리말로 '별빛 들판의 성 야고보'라는 뜻으로, 야고보의 시신을 발견한 사람이 신의 계시를 받고 별빛이 비추는 들판을 따라 걸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Compostela라는 단어 자체가 라틴어 Campus Stellae의 변형이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디에고, 산티아고는 스페인어권에선 사람 이름이나 지역 이름 등등으로 가장 사랑받는 이름중 하나다. 아래에 나온 지명이나 인명도 다 여기서 따온것.

전설에 따르면 844년 있었다는 전설 속의 한 전투에서 패퇴 일보 직전인 기독교군의 전열에 갑자기 백마를 타고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휘두르며 강림하여 무려 5,000 명이나 되는 무어 병사들을 쳐죽여 전투를 구원했다고 한다. 이 전설에 따라 스페인 쪽에선 정복과 군사, 나아가 스페인 전체의 수호 성인으로 존경 받는다.

스페인/포르투갈의 재정복기인 레콘키스타 때에는 마타모로스, 아메리카 정복 시기에선 마타인디오스로 공경받았다. 또한 국토회복운동 때는 스페인 병사들의 전투 함성 구호로 쓰였으며 국토회복운동이 끝난 후인 미국 남부/서부와 라틴아메리카 등 신대륙으로 간 콩키스타도르 기병대에서는 이 함성 구호를 썼다.

현재 칠레 수도인 산티아고 시와 쿠바 제2도시인 산티아고 데 쿠바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남서부의 샌디에이고
 등의 이름이 모두 이 성 야고보에서 온 이름이다. 셋 다 스페인 땅이었고 스페인 개척자들이 세운 도시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자료 : http://caminocorea.org/?page_id=218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에서 지도를 가져 왔습니다 ) 

 

순례의 역사 

https://namu.wiki/w/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성 대(大) 야고보가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직후, 그의 제자들이 야고보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돌을 깎아 만든 배(石船)를 타고 이베리아 반도의 갈리시아 지방에 도착했으나 거기에서도 로마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고난을 받던 중, 이 지역을 다스리던 토착민들의 지배자인 루파가 던진 시험을 통과해 갈리시아 지방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게 되었고 거기서 제자들은 야고보의 유해를 제대로 매장하고 갖가지 이적을 행해 로마인들과 토착민들을 개종하는데 힘을 쏟았다.

세월이 흘러 8세기 경, 지나가던 주민들이 밤길을 걷다가 밤하늘을 비추어야 할 별빛들이 구릉지의 들판을 맴돌면서 춤을 추는 것을 목격하였고 그 곳을 조사하다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이 지역을 '빛나는 별 들판의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라 부르면서 성지로 추앙받게 되었다.

레콘키스타 기간 동안 해당 성역과 성 야고보의 존재는 이교도인 무슬림들로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수호하는 수호성인으로 섬겨지는 동시에 타 종교인 상대로는 편견과 학살을 부추키는 매개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 레콘키스타, 즉 재정복 이후로부터는 성역과 순례길 자체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 소멸되어가기 시작했고 20세기 중반까지는 신심 깊은 순례자들만 사용하는 순례길이 되어 버렸지만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방문하면서 순례길의 재흥이 시작되었다. 이후 해당 순례길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우림과 툼밈

<사진설명>&nbsp;우림과&nbsp;둠밈.&nbsp;그러나&nbsp;위&nbsp;사진은&nbsp;추측일&nbsp;뿐&nbsp;실제&nbsp;모양은&nbsp;알려져&nbsp;있지&nbsp;않다.&nbsp;대제사장&nbsp;가슴&nbsp;흉패에&nbsp;우림과&nbsp;둠밈을&nbsp;넣었다.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찌니라”(출애굽기 28장 30절)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민수기 27장 21절)
에봇은 그 당시 제사장들이 입던 옷으로 오직 레위 제사장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 였다. 그런데 에봇을 입고 그 당시 무엇을 했는가하면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으로 점을 쳐 하나님의 뜻을 제비뽑기 식으로 알아내었다라고 한다. 에봇을 입은 자가 하나님 앞에서 질문을 하고 우림과 둠밈을 던져서 신의 뜻을 묻는다는 것은 기독교 뿐 아니라, 온갖 미신적, 주술사들이 즐겨 사용하던 방식이였고, 이것은 손쉽게 신의 뜻을 알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였다. 하나님의 급조된 해결책과 뜻을 알아 전시중에 세를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에봇, 우림, 둠밈의 역할이였다. 대제사장의 권한이였던 것을 사유화하기 시작했고, 또한 이것을 아무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이것을 진행 시킨 사건을 드러낸다.

 

퍼온곳의 링크를 달아 둡니다. 교회로 링크가 되니, 종교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https://news.yonsei.or.kr/pc/page/subp.html?cd=&mo=_view&seq=34350 

https://www.facebook.com/2047920732144869/photos/a.2107879379482337/2986202158316717/?type=3